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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평안하게 웃는 얼굴이다. 어린 아기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은 아름답다. 예쁜 아가씨가 생긋 웃는 모습도 아름답다. 너털웃음을 웃는 것을 보면 마음이 시원하다. 웃으면 자기가 기쁠 뿐만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기쁨을 나누어준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웃음에 인색하다. 어려서부터 “너 왜 웃니?” “웃지 마” “히히덕 거리지 마” “점잔 해야지” “언제 철이 들겠니?” 라는 말들을 들으며 살아 왔다. 점잔을 중요시하는 유교사상은 웃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일제시대의 압박과 6:25 동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웃음보다는 울어야 될 일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라고 William James는 역설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웃음으로 이겨낸 사람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사란스키 (Natan Sharansky)를 들 수 있다. 그는 정부반항 운동을 하다가 총살형 언도를 받고 쏘련 형무소에서 9년간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와 이스라엘에 와서 무역부 장관이 된 사람이다. 그가 형무소에 있을 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총살당할 두려운 사형장의 모습을 농담의 대상으로 만들고 혼자서 웃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 나와 서방세계로 온 후에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사형장의 모습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두려운 말이라도 15번 20번쯤 되풀이 말하면 그 말이 더 이상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유로울 때 유머는 사치스러운 것일는지 몰라도 감옥에서는 유일한 무기다. 웃을 수 있는 순간만이 자유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웃음은 마음의 공포와 근심걱정을 덜어 줄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하게 해준다. 커즌씨는 (Norman Cousins) 미국의 유명한 잡지 Saturday Review의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그가 이상한 척수염에 걸렸다. 온 관절이 계속 쑤시고 아픈데 약을 먹어도 별 효력이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병 문안 온 친구들이 가져온 아주 우습고 재미있는 비디오를 본 후 두어 시간 통증 없이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주치의와 상의해서 정말로 웃었기 때문에 통증이 없어졌던 것인지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또 다시 재미난 비디오를 보기 전에 혈액검사를 하고 비디오를 본 후 통증이 없어졌을 때에 또 혈액 검사를 하였는데 웃기 전과 후에 혈액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웃음은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몸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웃음은 통증뿐만 아니라 면역을 돕는 세포들을 증진시키기도 하며 병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기도 한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 다라든가 웃는 집에 복이 온다 라는 우리 나라 속담이나 일소일소 (一笑一少) 즉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 라는 속담들도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유대의 탈무드에는 하나님 앞에서는 울고 사람 앞에서는 웃어라 라는 말도 있고 울기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서는 안되고 웃기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서도 안 된다라는 말들도 또한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나는 우리들이 꼭 웃으면서 살아야 되는 이유가운데 네 가지를 지적해 두고 싶다.
첫째로 웃음은 우리들에게 새 힘을 주고 어려움을 이길 능력을 준다. 또 웃음은 분노를 몰아내고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다. 행복한 가정생활에는 반드시 유머와 웃음이 있어야 된다. 둘째로 웃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웃음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준다. 걱정이나 근심이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걱정을 나누어야 되겠지만 모두다 상을 찌푸리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웃음과 희망을 가져다주어야 될 것이다.
셋째로 웃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은 기쁠 때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도 웃으면서 기뻐해야 된다는 말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기 전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라고 사도행전 6:15 말씀에 기록되여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던 스데반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틀림없다. 만일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약간의 미소가 곁들인 평안한 얼굴의 모습이리라.
넷째로 웃음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도와 선교에 도움을 준다. 딱딱하고 무서운 얼굴로 야단을 치면서 전도하는 것은 피해야 된다. 또 근심에 쌓인 것 같이 힘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말씀을 전해서도 안 된다. 편안한 얼굴과 미소짓는 얼굴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하면 웃을 수 있는가. 웃으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웃어야 될 일도 없고 웃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어찌 웃겠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저 웃어야 된다. 그리고 웃음을 연습해야 된다.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자. 누구든 만날 때마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나 웃음으로 인사하자. 때로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우스운 행동을 이따금 해 보는 것도 웃음을 가져오는데 도움이 된다. 저절로 웃어지지는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좋게 지어 주신 우리들의 얼굴이 찌그러져서는 않될것이다. 미인대회에 나갈 만큼 아름답게 생겼다 해도 그 얼굴에 웃음이 없고 수심이 가득하거나 독살스런 표정이라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비록 그저 그렇게 생겼어도 웃음이 있는 얼굴은 아름다운 얼굴이다. 또 비록 주름살이 늘어가도 웃음이 있는 얼굴은 아름다운 것이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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