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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한인 연합교회와 나의
Philadelphia 35년
내가
Philadelphia에서 산지 35년이 되었다.
오랜 Philadelphia 생활을 회고해 보면서 나의 현 주소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나 혼자의 생각을 더듬어 본다.
내가
1960년 서울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한국은 지금처럼 잘 살지는 못했다.
미국에 가서 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에 예쁜 이화여대생을 만나 연애를 하였는데 그때의 꿈이 미국 가서 좋은 집 마련하고
Volkswagen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었다. 한때
Schweitzer 박사처럼 숭고하고 희생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의과대학에 다니던
순진했을 때의 한 순간의 일이었고 그 꿈은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미국에 올 때에는 성공해서 좋은 집사고 좋은 차 몰고 잘 사는 것이 꿈의
전부였었다. 나는 기독교인의 가정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믿음은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열심은 적었다. 주일 하루 교회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인생은
Philadelphia에 와서 변화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968년에
새로 시작된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집에 태어나고 주일학교에 다녔던 덕택에
금방 교회 집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Pennsylvania의과대학 병원에서 방사선과
Resident를 마치고 의과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Cherry Hill에
집을 마련하고 Penn 대학병원에 기차로 통근하게 되었다.
아침저녁 출퇴근 기차 속에서는 꾸뻑꾸뻑 조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차 속에서
갑자기 내 스스로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교회 집사로 있은 지 1년도
넘었고 사람들은 내가 괜찮은 집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성경을 한번도 끝까지 읽어보지를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기차 속에 동양사람은 나 혼자다. 내가 성경을 읽어도 무슨 책을 읽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니까 마음놓고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한번은 성경을 끝까지
읽겠다고 마음먹었다. 성경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성경이 그렇게도 재미없고 지루한 책인 줄은
미쳐 몰랐다.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도
지루하고 재미없던 성경을 겨우 끝까지 읽었는데 또 다시 처음부터 읽고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성경을
읽는 동안에 나의 인생의 꿈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본래 멋을 좋아했다.
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었다. 성공해서 Florida에
별장도 갖고 싶었다. 바다 수영을 좋아 때문에 Bahama
섬에 가서 신기한 산호들을 보며 열대 고기들과 놀고도 싶었다. 빠른 Sport car로
마음껏 달려보면서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런 꿈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Florida에 별장을 살 것이 아니라 교회 근처에 집을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늙어서 운전하기도 어려워지게 되면 걸어 다닐 수 있는 교회 근처에 집이 있어야 좋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획기적인 일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획기적인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런 생각들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잘
공부하기 위해 성경학교에 갔다.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야간부를
졸업하고 그 후에 Dallas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 학교에 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내가 택해서 하는 것이고 억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의를 느끼며 즐겁게 공부했고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얼마나 좋은 일이었었는지 감사할 뿐이다.
어느 날 기차 속에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의과대학 때에 잠시 가졌던 Schweitzer
박사다.
나도 선교지에 가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2주일이라도
좋으니 꼭 다녀오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매년 다녀온 단기 선교가 어언간 20년이
된다. 그 동안에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였다. 인도네시아,
인도, 방글라데시, 예멘,
러시아, 케냐, 콩고,
우간다, 탄자니아, 스와지랜드,
멕시코, 에콰도르, 페루,
브라질 등이다. 미국의 여러 다른 선교단체들을 통하여 갔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는 것이 나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며 사는 것이 또한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에 가졌던 꿈들을 다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옛날의 꿈들이 예수님 안에서 더 풍성하고 더 의미 깊게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 여러 가지 좋았던 일들이 많지만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 것과
Philadelphia 한인 연합교회에 나가게된 일이다. 1968년에
시작된 연합교회는 구영환 목사님이 초대 목사님으로 오셔서 교회의 조직과 필요한 여러 가지를 든든히 세워주셨다. 2대
고인호 목사님은 매주 각 구역으로 다니시면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가르치셨다. 많은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올바른 성경지식을 갖게 된데 에는 고인호 목사님의 영향이 무척 크다. 그때에 교인수가
2-300명 정도였으니 목사님이 직접 매주 구역에 오셔서 성경을 가르치실 수가 있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이었다. 3대 림택권 목사님은 영적으로 기초가
잘 세워진 교회를 더 알차게 성숙시키셨고 4대의 젊은 김승욱 목사님은 1세대를
훌륭한 강해설교로 계속 양육할 뿐만 아니라 2세대를 잘 이끌어 가실 좋은 목사님이시다.
이렇게 4대의 좋으신 목사님들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었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게 해 주는 일이었다.
이제 필라델피아 한인 연합교회의 특유한 점
한 두 가지를 기억해 두고싶다.
그 첫째는 헌금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보에 넣지 않도록 바꾼 일이다.
교회 초기에는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보에 실렸었었다. 그러던 것을 11조와
주정헌금은 물론이려니와 감사헌금도 누가 드렸는지 일체 이름을 내지 않기로 변경한 것이다. 주보에 이름을
내지 않으면 헌금액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진지한 토론 끝에 감행을 하였는데 주보에 이름을 뺀 다음에도 그 전에 비해 헌금이 전혀
줄지 않았었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또 설교 후에 드리던
헌금을 설교 전에 드리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주일에 교회에 올 때에는 말씀을 듣고 은혜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일주일간 받은 은혜를 먼저 감사 드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교회건물이다.
지금 예배당 본당은 1500명 교인이 다 함께 예배 드리기에는 너무 작다.
주차장도 비좁다. 그래서 5부로
예배를 드린다. 예배시간이 서로 다르니까 몇 달이 가도 만나 보지 못하는 교우들이 많다.
때로 넓은 장소에 큰 건물을 지어 이사 가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로 했다. 그 이유는 선교와 구제를
잘 하기 위해서이다. 큰 건물을 짓고 Mortgage
내는 돈이 많아지면 선교비와 구제비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선교와
구제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또 모든 교회가 누구나 다 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선교와 구제 이외에도 예배와 교육과 그밖에 해야될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선교만 하면 예배와 교육과 그 외의 일들은 누가 하겠는가?
개인이나 교회나 받은 은사는 각각 다르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받은 은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셋째는 찬양이다.
찬양이 예배드릴 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또
어느 교회나 모두 좋은 찬양대가 있겠지만 우리 교회는 특별히 찬양대에 큰 축복을 받았다고 믿는다. 찬양
대원의 수가 많기 때문에 헨델의 메시아를 위시해서 여러 가지 대곡들을 연주할 수가 있었다. 특히
1978년 Temple 음대 조영호 교수가 지휘를 맡게되면서 찬양대는 일약
크게 성장하였다. 지금은 성인 찬양대가 셋, 청년 찬양대가 둘,
주일학교 찬양대가 둘이다.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훌륭한 찬양대를 빼 놓을
수가 없다.
Philadelphia 한인
연합교회는 나의 고향이요, 기쁨이요 생명이다.
고향이란 그리운 곳이다.
왜냐하면 고향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였던 곳이요 미래의 꿈이 있던 곳이요 근심 걱정을 모르고 천진하게 살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애틋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적어졌다.
한국에서 산것보다 Philadelphia에서 더 오래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Philadelphia가 내 고향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고향은 역시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고향이라는 감정이 적어졌다. 지금 한국에 가면 어딘가 잘 어울려지지가 않는다.
완전한 한국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다. 나는 법적으로
미국시민이다. 그러면 내가 정말 미국 사람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Korean-American 이란 무엇인가?
반은 한국사람이고 반은 미국사람이란 말인가. 만일 내가 제대로 한국사람도 아니고 제대로 미국사람도
아니라면 내가 반병신이란 말인가? 어려운 질문들이 생긴다.
이민 1세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는지 몰라도 1.5세나
2세, 3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 질문에 대답을
찾았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셨고 동시에 100% 사람이셨다.
한 몸에 완전한 두 성품을 가지셨던 것이다. 이 엄청난 사실 가운데서
귀한 원칙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 몸에 한국인과 미국인의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50% 한국인, 50%
미국인이 아니라 100% 한국인이요 100% 미국인이다.
나는 지금 한국에 가면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어떤 말들은 한국 말 인 데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왕따”라는
말은 내 귀에 아직도 서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50%정도의
한국인은 아니다. 비록 한국말이 서툴고 생활 문화가 달라졌어도 나는 완전한 한국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내 영어가 서툴다 고해도 나는 완전한 미국인이다.
내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한국이요 또 하나는 Philadelphia다.
한국은 내가 태어난 핏줄로써의 고향이요 Philadelphia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고향이다. 이 영적인 고향은 이제까지 가졌던 어렸을 때의 고향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지는 고향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며, 미래의 꿈을
꾸며 걱정 근심이 없어지는 영적인 고향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멋지게 살아 보자는 어렸을 때의
꿈을 가지고 산다.
꿈이 없는 삶은 매력이 없다. 죽은 삶이다. 지금은 어렸을
때처럼 힘은 없다. 축구를 할 수도 없고 Tennis 치기도
힘들다. 그러나 나는 더 좋은 꿈을 가지고 산다.
내게는 세 가지 꿈이 있다.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즐기는 꿈이요 둘째는 남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는 꿈이요 셋째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고 주님을 증거하며 그의 아름다운 향기와 편지가 되며 사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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