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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의 진단을 받거나 뇌일혈로 쓰러지거나 그 이외의 다른 어려운 병에 걸리면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인 고통이 항상 따르게 된다.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이 육체의 고통 이상으로 심할 때도 있다. 정신적 고통가운데 어려운 것은 첫째로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가의 질문이고 둘째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현대의학이 발달되면 발달 될수록 육체적인 아픔은 많이 덜어 질 수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현대의학으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고통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욥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을 잘 믿는 의인이었고 아무 흠도 없는 사람이었다. (욥1:1) 그런데 별 이유도 없이 중한 병에 걸리고 자녀도 잃고 재산도 없어지게 되었다. 욥의 친구들은 네 차례에 걸친 긴 대화로 욥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욥의 친구들의 생각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병에 걸린 것은 죄 때문이다. 회개하라 고침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기다리라 징계 후에는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다. 악한 자는 망하고 의인은 흥왕 할 것이다. 이런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다. 욥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욥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별로 큰 죄 지은 것이 없다. 회개 할 것도 별로 없다. 사랑의 하나님이 이렇게 심한 징계를 정말로 주실까? 기다릴 기력이 없다, 더 큰 축복도 싫다, 이 고통에서 놓여나기만 하면 좋겠다. 의인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자는 흥왕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욥은 자기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자기를 저주하고 죽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실상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욥의 죄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탄의 시기 때문이었다. 사탄은 하나님에게 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축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지 병에 걸리거나 재산을 잃거나 변을 당하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욥은 축복을 받거나 또는 축복을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욥을 시험해 보아도 좋다고 하셨다.
욥의 친구들의 대화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과 권면이 잘못 되었다고 책망하신다. 병과 고통의 원인이 때로 죄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삼하12:15, 요5:14, 행5:5) 징계를 위해서(시39:11, 히12:5) 또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욥5:17-20)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욥에게는 그 어느 것도 해당되지는 않는 일이었다. 욥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꼭 집어서 어느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알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한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게 되면 첫째로 하는 질문이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또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변을 당하는가 라고 생각한다. 때로 질병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하고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들은 아픈 사람의 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가혹한 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런 말을 하는 욥의 친구들에게 노를 발하신 것이다. (욥42장)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그 고민을 없애 주셨다. 그런데 그 고쳐주시는 장면이 장관이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 할 수가 있다. "욥아. 네가 고통을 당한 것은 네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사탄의 시기 때문에 너를 잠시 시험해 보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고쳐주마." 라고 말씀 하셨음직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아니 하셨다. 욥기 38장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시어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로 시작하여 긴 질문을 욥에게 물으셨다. 얼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욥의 질문에 대해서 동문서답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하나님의 질문을 받은 욥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과 불만과 원망이 다 없어 졌다는 사실이다. 욥은 욥기42장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우리의 생명을 만드신 권능의 하나님을 영의 눈으로 뵈올 때에야 욥은고통과 아픔의 고민에서 놓여 날수가 있었던 것이다.
욥은 아무도 대답 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고민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였다. 욥은 우리들 보다 믿음이 더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순전하고 정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듣기만 했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들도 욥과 같지는 않은가.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닌가. 우리 마음이 걱정과 근심으로 차 있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욥과 같이 틀림없이 고통과 걱정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과 걱정과 고민이 생길 때에 먼저 해야 될 일은 고통의 원인을 찾는 것 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만나 뵐까? 하나님은 말씀 안에 계시고 기도 가운데 계시며 찬양 중에 계신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중에 어떻게 하던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조용한 묵상기도 가운데 때로는 온 힘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초점은 권능의 하나님을 만나 뵈는데 있어야 한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고 하나님을 영의 눈으로 뵈올 때에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변화시켜 주시고 걱정과 근심의 연약함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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