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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Becker는 미국 동부의 Pennsylvania 주에서 개업을 잘 하고 있었던 의사이다. 그는 결혼하기 전에 그의 약혼자에게
자기는 하나님께 일생을 바치기로 약속했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었다. 그러나 그의 개업이 순조롭고 유명해지게 되자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잊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프리카 내지선교회(AIM)의 찰스 헐버트로 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의료 선교사로
사역하던 그의 며느리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헐버트는 급하게 후임자를 구하는 중이어서 Dr. Becker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었다. 죄책감으로 가슴에 아픔을 느끼면서도 Dr. Becker는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구실로 헐버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헐버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다음 해 겨울에 Dr. Becker로부터 그곳에 가겠다는 승낙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1928년 여름 10,000달러의 수입을 뒤로하고 매월 60달러의 생활비밖에 없는 아프리카 오지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기 위해
Becker부부는 배에 올랐던 것이다.
Dr. Becker는 Congo의 오이차(Oicha)라는 곳에서 그의 의료사역을 시작했다. 아름드리 마호가니 나무밖에 아무 것도 없던
곳에 조그만 진료소를 지었다. 아주 원시적이었지만 아프리카 정글에서 필요한 것들을 꽤 충족시킬 수 있었다. Becker는 조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장기 계획을 수립 할 줄도 몰랐고 모금도 할 줄을 몰랐다. 그는 전체적인 계획이 없이 필요에 따라 건물을 짓고 병실을
추가했다. 병원 건축을 위한 예산이 따로 없었고 경비의 대부분은 한 달에 60달러씩 받는 Becker의 생활비 안에서 충당되었다.
오이차 에서의 의료 봉사는 급속도로 확장되었으며 2년만에 매일 약 200명의 환자들이 치료받게 되었다.
복음 전도는
Becker 사역의 중요한 목표였으며 주말은 마을 순회 사역을 하였다. 그는 공식적으로 성경 공부를 하지 못했고 성경 교사도 아니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성경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상황에 맞추어서 Becker 자신이 그림을 그렸다.
비록 조잡한 그림들이었지만 청중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 그림을 그려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했다. 미국 주일 학교에서 사용하던 그림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 한 번은 글자를 모르는 콩고 인 한 사람이 한 달 전
Becker로부터 얻은 그림 동화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사람들의 영적 필요보다 육신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로 그는 그의 의료사역 안에 영적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의료 사역은 메시아를 위한 세례 요한처럼
땅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이 사역 자체가 곧 선교라고 생각하게 되자 그의 고민은 살아지게 되었다. 이 진료소가
없었다면 어떻게 수백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서 치료도 하고 말씀도 전할 수가 있었겠는가?
Becker는 특별히 나병 환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나병 환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치료법을 찾고 있었다.
Becker의 나병 환자에 대한 관심은 널리 알려졌고 수천 명의 나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그에게 왔다. 나병 전문의들도
오이차를 방문하여 그가 연구한 것들을 배워 가기도 했다.
오이차에는 의사가
Becker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나병 치료뿐만 아니라 매년 500명 이상의 아기를 받고 4,000건 이상 수술을 했다.
콩고 국민들을
위한 그의 희생적인 봉사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발생한 격렬한 민족주의 운동에는 Becker도
견디지 못했다. 1964년 70세 되던 해에 그가 사랑하던 아프리카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간신히 난폭한 심바 게릴라들을 피해
오이차를 떠났다. Becker에게는 아프리카가 그의 고향이었다. 그는 휴가에 대해 알러지가 있었고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아프리카에 뭍칠 각오였다. 1945년 이래 20년간 미국에서 머문 기간이 일 년도 안 되었다.
1년 남짓해서 콩고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자 Becker는 다시 오이차로 돌아와서 게릴라들이 부수고 간 건물을 복구하고 과거보다 더
필요해진 의료 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1966년 Becker는 세 차례 심장병으로 고생했지만 물러서지 않았으며 쉬라는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분명히 침대 위에서 오늘을 보내지는 않겠다."
Becker는 거의 50년 동안 의료 선교사로 섬기면서 아프리카에 지워지지 않는 업적을 남겼다. 83세가 되어서야 미국으로 돌아가
은퇴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미국의 한 저명한 신문은 그에 대해 기록하기를 "미국은 콩고에서 미국의 슈바이처를 가졌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Becker에게 배웠던 한 아프리카인의 말 가운데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했고 많은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의사 Becker 에게서 나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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