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론드리나의 복음병원                           전희근

 

브라질의 상 파울로에서 경비행기로 한 시간정도 서쪽으로 날아가면 론드리나라는 아주 깨끗하고 평화스로운 도시가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하늘은 짙은 청색으로 청명한데 뜨거운 햇살이 눈이 부시다. 2 주일 동안 일 하게될 론드리나 복음 병원에서 세 사람이나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었다. 한 사람만 나와도 충분할 것을 세 사람이나 나온 것을 보니 인심이 좋은 곳 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통역을 맡아줄 브리스길라와 내 아내가 일 할 병리 검사실의 실장과 병원 총무 실에서 나온 세 사람이다. 브리스길라는 살결이 아주 희고 예쁘게 생긴 백인 처녀이고 병리실의 실장은 수염이 덥수룩한 갈색피부의 남자였고 총무 실에서 나온 사람은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동양인도 아닌 그 모두를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을 주는 어여쁜 여인이었다.

브라질에는 흰색, 검은색, 황색, 갈색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여러 가지 색깔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미국에는 더 많은 종류의 인종들이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혼혈이 적은데 비해 브라질은 훨씬 혼혈이 많이 되어있다. 이런 현상을 어떤 역사가가 재미있는 글로 표현했던것이 생각난다. “미국에 온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을 다 죽였다. 그러나 브라질에 온 폴투갈 사람들은 하나님께 눈을 슬쩍 돌리고 그곳 여자들과 잤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 사람들은 마음들이 좋고 까다롭지가 않다. 시간에 쫓기고 철두철미한 사회에서 살던 나에게는 부럽게 느껴졌다. 점심 시간이 두 시간이나 된다. 10분 안에 먹어 치우던 나에게는 두 시간이나 걸리는 점심시간이 오히려 무척 지루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곳의 고기 맛은 일류다 슈하스카리아라고 불리는 고기 집에 가면 긴 쇠 꼬치에 고기를 구어 나오는데 아주 잘 익은 것부터 설익은 부분까지 마음대로 짤라 먹을 수가 있다. 훼지아다라는 돼지 요리는 이색적이다. 돼지의 코, 귀, 혀, 심장, 내장, 족발 그리고 마지막에는 꼬리가 나오는데 살은 전혀 없다. 본래 노예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음식중의 하나가 되었다. 옥수수로 만든 주스와 아이스 크림도 이색적이었다.  브라질은 그렇게 부유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부유한 나라 못지 않게 생활을 즐기는 것을 보며 또 한번 부럽게 느껴졌다.

혼혈해서 사는 모습이나 가난하면서도 생활을 즐기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론드리나 복음병원이었다. 이 병원은 벽돌로 견고하게 잘 지은 240개의 병상을 갖춘 큰 병원이다. 1950년에 소규모 진료소로부터 시작해서 1971년에 현재의 건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병원은 장로교와 감리교가 힘을 합쳐 시작한 것이 특이하다. 그후에 카톨릭교회가 힘을 합친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는지 의견이 많이 다를 것이다. 장로교면 장로교이고 감리교면 감리교지 이 두 교단이 함께 일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카톨릭 교회도 함께 병원을 운영한다니 여간해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허기야 놀라서는 안될 일이다. 장로교, 감리교, 카톨릭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아닌가?  병원에는 장로교 목사님과 감리교 목사님 그리고 신부님 등 네 분의 원목이 있어 각기 환자를 돌보고 있다. 물론 영적인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되겠지만 병원 운영에는 서로 힘을 합치면 더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선교지에 가보면 때로 장로교 계통의 병원과 감리교 계통의 선교 병원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마치 경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선한 의미에서 경쟁은 좋은 것이겠지만 선교지에서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이 재정적으로나 인원으로 지극히 어려운 처지에서 따로따로 병원을 세워 어려운 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다. 언젠가 우리도 장로교와 감리교 또는 다른 교파의 교회가 힘을 합쳐 병원을 운영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의료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적인 문제와 실제 운영에 여러 가지 재정과 사무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선교는 동역을 해야 된다고들 외치고 있다. 혼자 독불 장군식으로는 선교를 제대로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의 동역은 같은 교단이나 같은 선교 단체 내에서 이루어 저야 되지만 앞으로는 교단을 초월해서도 이루어저야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어린애 같은 망상에 불과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망상을 갖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런 망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망상이 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