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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12월
29일,
뉴욕을 떠나 인도로 가는 길에 스위스의 취리히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취리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로 백설처럼 흰눈이 덮인 높다란 산들이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참으로 경치가 장관이다. 취리히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겉으로 보기에는 색상이 우중충해
오래된 고물 기차처럼 보이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가 널찍하고 깨끗하다. 기차 안에는 한 칸에 서너 명의 손님이 있을 뿐 텅텅 비어
있다.
시내의 스타델하펜에서 기차를 내려 앰베서더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은 아스팔트의 결이 보일 듯이 도로가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있다. 마침 주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쓸쓸하리 만치 한산하다.
전화 번호부에서 김형희씨와 클로우드 스틸린(Claude
Stierlin)의
전화 번호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김형희씨는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에 함께 출석했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 스위스에서 미국에 유학 와 있던
클로우드 스틸린과 결혼해
3남매의
자녀와 함께 지금은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형희씨가 살고 있는 집은 취리히 교외에 자리 잡은 아담한
2층
집이다.
10여
년 만에 만난 우리를 반기며 형희씨 부부는 아내와 나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고 분주하다. 나는 스위스에 오면 꼭 치즈 폰듀(Cheese
Fondu)를
먹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음식은 일체 준비하지 말고 폰듀만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치즈 폰듀는 실상 대단한 음식이 아니다. 특수한 치즈를 녹인 다음 포도주를 넣고 끓여 큰 사기 그릇에 담고 삥 둘러앉아 빵 조각으로 치즈를 찍어
먹는 것이다. 치즈에 포도주를 섞어서 끓인 맛이 참으로 특유해서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그릇도 별로 필요
없고 다른 음식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여럿이 삥 둘러앉아 한 그릇에서 떠먹기 때문에 구수한 한국적인 정이 흐른다.
오후에는 형희씨네 온 가족과 함께 산보를 나갔다. 스위스 사람들은 등산과 스키 타는 것을 즐긴다. 겨울이라 꽃잎은 없지만 눈 덮인 시냇가를
산책하는 것은 여름철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렇다고 시냇가의 경치가 유달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시냇물이다. 그런데 클로우드는 온 가족이 매일 이곳으로 산보를 나와 아름다운 자연을 항상 즐긴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문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 시내를 흐르는 스쿨킬 강만 해도 이곳에서 보는 시냇물이나 다른 작은 강보다 경치가
더 좋으면 좋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스쿨킬 강을 아름답다고 말해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산책을 나가는 일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시냇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매일 매일 산책을 즐기는 이들의 여유 있고 소박한 정취가 부러운 마음을 자아낸 것다.
스위스는 종교 개혁의 본산지이고 장로교 창시자인 존 칼빈(John
Calvin)이
태어난 곳이며, 츠빙글리(Ulrich
Zwingli)와
바르트(Karl
Barth)
같은 훌륭한 신학자들이 활약하던 곳이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기독교인이 총 인구의
92%나
된다고 한다. 스위스에는 세 가지 종류의 세금이 있는데 국세, 교육세, 그리고 교회 세금이 그것이다. 목사의 연봉이
9만
달러 정도나 된다고 하니 이 나라의 목사,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경제적으로 꽤나 안정이 된 나라이고
GNP가
$35,160로
미국의
160%나
된다.
클로우드의 주장에 의하면 스위스 사람들이 점점 잘 살게 되고 걱정과 근심이 적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신앙심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목사님들은 교인들에게 세례식과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을 인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부에서 나오는 목사 봉급이 충분하므로 목사님들이 열심히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열성이 없다고 한다.
한편 젊은 목사들 가운데 교회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먼저 교회를 정부 교회로 등록하지 않고 자립 교회로 시작한다고
한다. 정부에서 주는 목사의 봉급이 없게 되니까 교회 발전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교회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 하루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가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는 스위스의 풍경과 오래간만에 만나는 옛 친구 김형희씨와 클로우드와의 감회, 그리고
기독교 종교 개혁의 발상지인 스위스의, 겉모습은 화려하나 안으로는 쇠퇴해 가고 있는 교회의 실상을 바라보며, 영적인 각성을 하면서 목적지인
인도를 향해 스위스 항공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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