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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달이라지만 적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브라질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다. 상파울루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밤인데도 찌는 듯이 더운 공기가
남국에 온 것을 실감케 한다.
제
3국을
여행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져 오는 곳은 다름 아닌 공항 세관이다. 트렁크 속에는 단기 선교에 필요한 빨강, 노랑의 얼룩덜룩한 약품통과
찬양할 때 쓰이는 마이크와 확성기, 테이프 리코드 등의 기구들이 넘칠 듯이 들어 차 있어 늘 말썽을 일으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항에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이중열 집사와 그의 브라질 친구가 나와 아내를 멀찌감치부터 발견하더니 그저 따라만 오라는 시늉을 한다.
세관 검사하는 곳을 옆으로 지나치면서 한군데 통로를 거치는데 아무도 검사하는 사람이 없다. 추측건대 특별 인사(VIP)들이
무사 통과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어려움 없이 공항을 빠져 나와 편하기도 하고 도와준 이 집사와 브라질 친구가 고맙기도 했지만, 브라질이란
권력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5번째로
땅 덩어리가 큰 나라로 남미 대륙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천연 자원이 풍부해 살기에 좋은 나라인데도 빈부의 차이가 많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나라를 제대로 관리하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이곳에서 해방 신학(Liberation
Theology)이
태동했는가 보다. 해방 신학이란 죄와 악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이론으로 시작했는데 극단적인 좌경으로 흘러 자유주의 신학이 되어 버렸다. 죄와
악에서 구원받고 해방된다는 것은 누구나가 원하는 바이지만 문제는 죄와 악이 무엇이며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 하는 점이다.
해방 신학의 극단적인 사고 방식은, 죄란 비인도적인 행위를 말하며 구원이란 이런 비인도적인 독재와 부정의(不正義)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을 배반해 영혼이 병들고 죽게 된 죄에 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예수님을 보는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 부정과 부조리에 항거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한 나머지 참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영생을 보여 주신 예수님에 관해서는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브라질은
93%가
기독교인이며 그 중
73%가
가톨릭,
17%가
신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중 진정한 가톨릭 신자는
10%
정도이고 진정한 신교인은
15%
내외의 통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브라질 기독교인의
50%
정도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해방 신학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참석했던 브라질 장로 교회의 예배 광경은 매우 다채로웠다. 주일 아침 예배는 무척 조용하고 엄숙하게 지내는 것이 한국이나 정통적인 장로
교회나 감리 교회의 예배 모습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주일 저녁 예배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음악 예배로 드리는데 목사님이 이따금씩 성경을 봉독하며 한 두 마디 말씀을 하시는 이외에 설교는 없다. 음악은 교인들이 갖고 있는 악기란 악기는
모두 동원이 된 모양이다. 피아노와 기타, 키보드, 나팔, 북 등의 악기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양 손을 높이 쳐들고 율동까지 섞어서 부르는
찬송이 마이크와 확성기를 타고 온 교회에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예배실이 큰 물결에 휩쓸려 떠나가는 듯하다.
나는 손을 들어 볼 용기도, 더구나 찬송을 부를 흥미도 생기지 않는다. 나를 이 곳에 데리고 온 통역 아가씨 브리스길라(Priscilla)는
열심히 찬송을 부르면서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시끄럽고 요란하기 짝이 없는 예배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윗 임금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적군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되찾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올 때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이것을 본 사울 임금의 딸 미갈이 다윗을 멸시하는 태도를 취했을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고 말하였다(사무엘하
6장).
그러자 내게도 차츰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서투른 포르투갈 말로 목청을 다해 힘껏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율동에
맞추어 열심히 부른 찬송을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셨으리라고 믿는다.
상파울루에서 경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서쪽으로 날아가면 론드리나(Londrina)라는
아주 깨끗하고 평화스러운 소도시가 나타난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하늘은 짙은 청색으로 청명한데 뜨거운 햇살이 눈이 부시다. 유난히 따갑게 느껴지는
태양 광선은 아마 이곳의 강한 자외선 때문인가 보다. 태양이 지구 위에 더 가까이 내려와 앉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2주일
동안 내가 일하게 될 론드리나 복음 병원(Hospital
Evan-
gelico
de
Londrina)에서
세 사람이나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한 사람만 보내도 충분할 것을 인심이 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은 병원 총무실에서, 또 한
사람은 내 아내가 일할 병리 검사실의 실장, 그리고 나의 통역을 맡아 줄 브리스길라이다. 브리스길라는 키가 훌쩍 크고 미인형으로 생긴 육체파
아가씨이다. 그런데 세 사람이 모두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브리스길라는 살결이 아주 흰 백인이고 병리실의 완다(Wanda)는
자그마한 키에 수염이 덥수룩한 갈색 피부의 소유자, 총무실에서 나온 여인은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동양인도 아닌 그 모두를 섞어 놓은 것
같은 피부색과 모습을 지니고 있다.
브라질은 흰색, 검은색, 황색, 갈색,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여러 가지 색깔의 피부를 가진 사람이 살고 있다. 미국에는 더 많은 종류의
인종들이 살고 있지만 혼혈이 안 된 것에 비해 브라질은 훨씬 혼혈이 많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500년대
식민지 초기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미국에 온 청교도들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온 가족이 이민을 왔지만 브라질에 온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두 남자 선원들이었고 모험과 탐험의 여행이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정착하고자 마음먹고 떠나 온 길이었으니 싫으나 좋으나 신대륙에 머물기로 한
것에 비해 포르투갈 사람들은 브라질에 와 보니 이곳이 좋아서 정착하기로 했던 것이다. 어느 해학적인 역사가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을 다 죽였다. 그러나 브라질에 온 포르투갈 사람들은 하나님께 고개를 슬쩍 돌리고 그곳 여자들과
잤다.”
론드리나 복음 병원은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잘 지은
240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는 규모가 꽤 큰 병원이다.
1950년에
소규모 진료소로부터 시작해서
1971년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병원은 첫 출발부터 장로교와 감리교가 힘을 합쳐서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외에 독일 교회가 가세를 하더니 현재는
가톨릭까지 힘을 합치고 있다는 것이다. 장로교면 장로교이고 감리교면 감리교이지,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일한다는 것도 신기한 터에 가톨릭까지
합세를 하고 있다니 여간해서 믿어지지 않는다. 하기야 아무것도 놀랄 것이 없는 것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가톨릭 등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아닌가?
나도 현재는 장로교에 출석하고 있지만 우리 집안 내력을 따져 보면 여러 교파가 혼합해 있다.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울 정동 교회
감리교인이셨고, 나는 어린 시절을 인천의 내리 교회(감리교)에서 보냈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친정은 독실한 가톨릭 교인들로 나의 사촌 여동생은
갈멜 수녀원의 수녀가 되기도 했다. 나는 또한 신학 공부를 침례교 계통의
PCB(Philadelphia
College
of
Bible)와
댈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마쳤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다양한 기회를 접하게 된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감리교회나 침례교회나 성당이나 아무 곳에서도 부담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데다가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와 부담 없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론드리나 복음 병원은 심장 수술까지 하는 고도의 기술을 갖춘 최현대식 병원이다. 방사선과에 최근
CT
Scan
기계가 새로 도입되었는데 일본인
3세
닥터 미그엘(Miguel)이
이 일을 맡고 있다.
기계가 새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경험이 없어 나는 이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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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와 훈련을 시키는 일을 담당했다.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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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용 슬라이드 필름을 충분히 준비해 갖고 왔기 때문에
2주일
동안 매일 한 시간 반씩 강의를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아내는 병리 검사실에 암세포 검사실이 없어서 이것을 신설해 주고 강의를 해주느라 나름대로 바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인도에 이어 두번째로
암세포 검사실을 창설해 준 것인데 아내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내가 더 흥분이 되고 가슴이 설렌다.
병원에는
4명의
원목이 있는데 환자들을 방문해 영적인 상담을 해준다. 그러나 환자들을 위한 공중 예배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세계 어디를 가거나 대체로
작은 선교 병원에서는 예배가 활발히 진행이 되고 병원이 커질수록 예배와 전도 활동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된다.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병원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모습이 작아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병원장과 원목의 허락을 받아 공중 집회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응급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 앞에서 확성기를 통해 포르투갈 말로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찬송가
40장)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응급실 바깥은 바로 대로로 연결이 되어 있어 지나가는 행인들은 뜻하지 않은 한국 사람의 찬송을 듣게 되었다.
설교는 처음 며칠간은 통역을 통해서 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래서 얼마 후부터는 설교문을 포르투갈 말로 번역을 해 달라고 해서 그냥 통역
없이 읽어 나갔다. 서투른 포르투갈 말이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듣는 것을 볼 때 나의 말을 알아 듣는 듯 여겨져 기분이
흐뭇했다.
약물과 치료는 인간이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우리가 발굴해서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것과, 약물과 수술로도 치료하지 못할
병이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했다.
배터리로 쓰는 손가방 만한 확성기
PA
시스템은 선교지에서 나의 둘도 없는 반려자이다. 응급실뿐 아니라 여러 병동마다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매일 찬송과 말씀을 전했다. 이 일은
방사선과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
하루는 한 병동에서 찬송을 끝마치고 다음 병동으로 옮겨가기 위해 확성기를 챙겨 막 출발을 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한 간호사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세우더니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다시 한번 찬송을 불러 줄 수 있겠느냐고 간청을 한다. 다음 약속 시간이 빠듯하기고 했고 또 방금
찬송을 부른 곳에서 다시 찬송을 부르는 것이 멋쩍은 생각이 들었으나 간호사의 모처럼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미안했다.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한
입원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20세
가량의 남자 환자가 혼자 무척 쓸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 교통 사고로 양쪽 다리가 모두 골절이 되어 깁스를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침대에
묶어 놓은 상태였다. 멀리서 들려 오는 나의 찬송 소리를 듣고 마음이 감동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찬송을 한번 더 듣고 싶어서 간호사에게 나를 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는 그 청년을 위해 나의 통역자 브리스길라와 간호사, 이렇게 세 사람을 놓고 마치
3백여
명이 모인 큰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온 정성을 다해 찬송을 불렀다. 그러고는 간단한 말씀을 전했다. 그러자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떨어지고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리가 다 나아 퇴원을 하게 되면 꼭 교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 한
청년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만으로도 이미 브라질에 온 보람을 느꼈다.
브라질을 떠나기 전 미그엘 박사의 주선으로 론드리나 의과 대학에서 방사선 강의를 하게 된 일은 뜻밖의 좋은 기회였다. 의과 대학생과 교직원들이
모두 합쳐
2백여
명이 강의실에 빽빽이 들어 찼다.
1시간
반의 강의인데 통역을 쓰면 절반으로 시간이 줄어든다. 마침 이 대학에 동시 통역 기계를 갖고 있는데 아직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의학
용어 해석 등 브리스길라와 장시간에 걸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철저한 준비를 끝냈다.
마침내 우리는 동시 통역 기계를 완벽하게 사용한 론드리나 의과 대학에서의 첫 의사, 통역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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