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일본인의 우물정신

     

브라질은 거의 미국과 맞먹는 크기의 나라로 인구 약 1 5천만 명 가운데 여러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미국에는 더 많은 종류의 인종들이 살고 있으나 거의 혼혈이 안 된 것에 비해 브라질에는 혼혈이 특히 많은 것이 눈에 띈다. 95년 패트릭 존스턴(Patrik Johnston)의 통계 조사에 의하면 브라질의 인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유럽인 53% : 포르투갈인 계통 15%

이탈리아인 계통 11%

스페인인 계통 10%

독일인 계통 3%

             흑  인 11%

             혼혈인 35%

동양인 1.1% : 일본인 1,200,000

중국인 160,000

아랍인 150,000

한국인 60,000

인디언 0.14%:200부족, 약 500,000

 

한편 일본인들은 95년으로 브라질에 이민 온 지 백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브라질에 머무는 동안 일본인 3세 닥터 미그엘(Dr. Miguel)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저녁을 들게 되었다. 30대 후반의 미그엘의 일본인 친구들이 몇 명 함께 모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일본 말은 몇 마디 간단한 표현을 겨우 할 뿐이다. 내가 그들보다 일본 말을 훨씬 잘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란다.

음식은 순일본식이다. 초밥과 오뎅, 생선찜, 고기 구이 등 미그엘 부인의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 맛뿐만 아니라 음식을 얼마나 풍성하게 준비했는지 양껏 포식을 했다.

 

닥터 미그엘의 안내로 일본인 센터에 가 볼 기회가 생겼다. 론드리나 시내를 벗어나니 넓은 들에 채소와 곡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마치 농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약 1시간을 자동차를 달려서 일본인들이 만든 센터에 도착했다. 넓은 들에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 그리고 실내 및 실외 정구장이 들어 차 있다. 실내 정구장에는 정구 코트 4개와 수백 명이 시합을 구경할 수 있도록 층층대로 만든 널찍한 관람대가 잘 지어져 있다. 또한 실내 한 쪽에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다. 닥터 미그엘과 그의 친구와 우리 부부가 정구 시합으로 한참을 땀을 빼고 나자 미그엘이 목을 축이자며 우리를 가까운 우물가로 인도한다. 센터 한가운데 아주 인상적인 우물이 세워져 있다.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마치 정자와 같은 큰 건물에 보통 우물보다 3배는 더 크게 지어진 우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굵은 기둥과 거뭇거뭇한 질 좋은 나무로 만든 지붕이 잘 어울려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여기서 길어 올리는 물은 시내에서 먹는 물과 달라서 더 시원하고 아무런 약품이 첨가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광물질이 많아서 몸에 좋다고 미그엘은 물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다. 일본 사람들은 이곳 센터에 와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모두 양동이에 이 우물 물을 한 가득 담아 가지고 간다고 한다. 한참을 우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에 차츰 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물이야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다 비슷한 것이지 특별히 다를 것은 없을 터이지만 이 우물 물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부럽고, 그보다도 이 우물을 구심점으로 일본인들이 여기에 모여들고 합쳐진다 생각하니 더 부러워진 것이다.


 

백년 전 농업 이민으로 이곳에 온 일본인들은 모두들 한눈을 팔지 않고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나갔다. 같은 농업 이민으로 브라질에 온 한국 사람들이 농장 대신 시내에서 다른 직업에 종사해 브라질 정부로부터 한국 이민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 것과 대조가 된다.

농장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던 일본인들 가운데는 차츰 농업으로 성공을 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고 이들이 땅을 조금씩 사 들이기 시작해 이제 이 근방의 땅들은 거의 일본인의 소유가 된 것이다. 비록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꽤나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니까 여기에 힘을 합쳐 급기야 일본인 센터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일본 말은 하지 못하면서도 자기들의 혈통이 일본인인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 센터가 일본인들을 다시 한자리에 합치게 하는 데 귀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회비나 찬조금을 받고 있는데 모두들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한다. 브라질에 이민 와서 사는 일본인들은 조국을 떠난 지 백년이 되다 보니 이제는 완전한 일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브라질 사람도 아닌 것이 생김새는 그대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닥터 미그엘과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을 서슴없이 브라질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브라질인이면서 동시에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다. 즉 이들은 정확히 일본도 브라질도 아닌 제 3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점차 불완전한 인간으로 변해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이질적인 문화를 적당히 절충해서 또 다른 문화의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제3의 문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훌륭한 예를 이곳 일본인 센터의 우물가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