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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독 의사회(Russian
Christian
Medical
Association)의
초청으로
93년
1월
2주일간
모스크바에서 지내게 되었다. 러시아 기독 의사회는 창립된 지
1년밖에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한 맛이 있고 박력이 있어 임원들과 사귀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매년 단기로 선교지 병원을 찾아가 봉사를 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되는데, 이제까지는 선교 병원에 가서 일을 했기 때문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알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에는 아직 기독
병원이 없어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전혀 짐작을 못한 상태에서 궁금한 마음만 잔뜩 안고 떠났다.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던가, 기독 병원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네 개의 정부 병원과 다섯 곳의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으며 병원
대신 민간 아파트에서 지냈기 때문에 소련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정월이라 굉장히 추울 줄 알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떠났는데 금년은 이상 기온으로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라고 한다. 며칠 동안 겨우(?) 영하
22도를
오르내렸을 뿐이다. 모스크바 시내는 무엇보다 탁 트인 길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미국보다 더 넓었으면 넓었지 좁지는 않다.
지하철이 또한 인상적이다. 미국과 한국에 비해 유난히 더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모스크바 시내 전체에 광범위하게 쫙 깔려 있어 시내 거의 어느
곳이나 지하철을 이용해 움직일 수가 있게 되어 있다. 게다가 지하철이 매우 자주 다닌다. 아마 매
1-2분
마다 한 대씩 오는 모양이다. 지하철 바닥의 장식이 호화로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가 하면 지하철 구내에 화려한 불을 밝히고 있는 샹들리에가
이색적이다.
모스크바 여자들의 옷차림이 무척 호화롭다. 밍크 코트, 여우털, 물개털, 그리고 가장 값이 비싸다는 세이블 털 등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털 코트를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본 소련 여자들은 대개가 뚱뚱하고 남자처럼 강인한 인상의 얼굴로 기억되는데, 막상 모스크바
거리에서 마주친 여자들은 늘씬한 데다 살결이 유난히 희고 화장이 짙다. 표정이 없어 무뚝뚝한 인상을 줄 뿐이지 막상 말을 붙여 보면 정이 많고
눈물도 많은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에는 높은 건물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개인 집이 거의 없고 그 대신 거대한 아파트군이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는 대개
10층
이내의 높이인데 넓은 대지에
2-3블럭씩
걸쳐 길다랗게 우뚝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의 거대한 빌딩처럼 보인다.
아파트는 방
2개짜리가
대부분인데 하나는 침실, 다른 하나는 부엌 겸 식당이다. 이 두 개의 방에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까지 대개
6-7명
이상의 식구가 살고 있으니 프라이버시가 있을 수 없다. 찬물, 더운물이 잘 나오고 부엌에 가스 스토브가 비치되어 있다.
한 달 아파트 세가 전기, 수도, 가스를 모두 포함해 미화로
1-2달러이다.
지하철과 버스의 한달치 표를 샀는데
35센트이다.
모스크바에서 보통 월급쟁이의 봉급이
25달러
안팎이니까 그런 대로 최저 생활은 보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생산이 점차 적어지고 경제 사정이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가격을 억지로 싸게
매기고 또 그것을 지탱하려니까 자연히 적자가 나게 되어 이것이 소련이 망한 주요한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
다.
러시아 기독 의사회에서 내게 방
4개가
딸린 고급 아파트를 구해 주었는데 이 아파트는 외국인에게는 한 달에 $500-1,000를
물린다. 유명한 볼쇼이 극장 입장권이
20센트인데
외국인이 사려면 $30-40이다.
자유 국가 체제가 되면서 물가 통제가 없어져 부르는 것이 값이 된 모양이다. 물가의 상승은 엄청나서 어떤 품목은
1년에
무려
7백배나
올랐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들은 물건을 구입하는데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들이 생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모스크바에는 의아할 정도로 음식점이나 가게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모스크바로 떠나오기 전에 음식을 충분히 준비해 가지고 가라고 여러 사람들이
일러 주었다. 실제로 도착해 보니 가까운 거리에 음식을 사먹을 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다.
의사회 임원들에게 내가 저녁을 대접할 터이니 러시아 음식점으로 안내를 해 달라고 했으나 아무도 갈 만한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들은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사는 모양이다.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인나(Inna)라고
하는 체격이 날씬하고 믿음 좋은 여인이 나의 통역으로 계속 수고해 주었다. 하루는 인나와 나의 아파트에서 점심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미국에서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단무지와 함께 내놓았다. 인나는 참으로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루룩 잘 먹는다. 정말로 맛이 좋으냐고 물으니 정말이라며
남편이 이 맛을 보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나가 가고 난 후 저녁 식사 때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다시 라면을 끓여 놓고 젓가락을 들려 하는데 낮에 인나와 나누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무심히 떠오른다. 그녀에게는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두 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사는지 혹은 여유 있게 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인나의 옷차림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인나 생각을 하니 라면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다. 모스크바를 떠나오기 전에 라면 남은 것과
단무지, 소시지 등을 인나에게 건네 주니 참으로 고맙다고 반기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러시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과 두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아니었던가? 그러던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몰락한 데는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관점에서 그의 멸망 원인을 따져 보았다. 첫째 하나님을 무시한 일이다.
둘째는 인간을 무시한 것이다. 인간을 무시함과 함께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도 무시했다. 인간은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 경쟁심과
물질에 대한 욕망 등이 있는 법이다. 지난
75년간
러시아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정부에 빼앗긴 채, 나의 집, 내 땅,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어져 버렸다. 봉급은 월 평균
25달러로
누구나 똑같다. 열심히 일하면 수고한 만큼 보상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진대 공산 치하에서는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나 게으른 자나
누구나 월급이 똑같다.
또한 모든 회사와 사업체가 국가 기관이므로 아무리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해도 해고당할 염려가 없다. 그러므로 굳이 열심히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으리라. 정부는 모든 국민들을 평등하게 잘살게 해주겠다는 바람직한 사상으로 출발했으니까 모든 시민들이 잘 따라 오리라고 애초에 너무 낙관을 한
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죄성(罪性)을 무시한 채 인간을 한낱 기계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을 한 채 이 세상을
개선해 보려고 해도 이 세상에 완전한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회개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가장 천국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의 감정을 무시한 것이 러시아가 어이없이 쓰러진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가진다.
러시아인들의 교회로는 러시아 정교, 침례교, 오순절 교회와 안식교가 있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선교사들이 인도하는 선교 교회들이다.
러시아 제일 침례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본당이 약
7백석
규모의 교회인데 주일 참석한 인원이
1,500명은
족히 되는가 보다. 교회 중앙의 가운데 복도와 가장 자리 통로 등 설 수 있는
곳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빽빽이 채워졌다. 마치 사람을 콩나물 시루처럼 가득 실은 서울 시내 버스를 연상케 한다.
무려
2시간
15분
동안 예배가 계속되는데 예배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기는 나가려고 해도 도저히 빠져 나갈 만한 통로가 없다. 성가대의 찬양은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짤막하게
5차례
이어진다. 러시아인 특유의 굵고 우렁찬 남성 합창과, 낮고 기름진 여성 합창이 근사한 하모니를 이룬다.
또한 한국 선교사님들이 인도하는 교회 두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수백 명의 성도가 모였는데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다. 이곳에 사는 한인
2세,
3세들이
통역을 하지만 이들의 한국 말이 그리 유창한 것이 못 된다. 그러니 이들의 통역이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이러한 통역을 통해서
2시간
이상이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격했다.
공산주의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기독교를 아주 없애 버리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을 그리는 마음조차 송두리째 없애 버리지는
못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선교사들의 역할과 공헌이 상상외로 크다고 느껴졌다. 이곳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역할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더
요구될는지는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가 필요 없게 될 날이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하루 빨리 러시아에
기독교가 무럭무럭 성장하고 이들 교회가 자립해서 선교사가 필요치 않은 날이 찾아와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러시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고 양육하는 역할을 한국 선교사들이 한 부분 떠맡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 아직 기독 병원이나 선교 병원이 없기 때문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세계 의료 선교회(World
Medical
Mission)에서는
러시아에 미국 의사들을 한 사람씩 보내어 장차 러시아에 기독 병원을 만들 터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해부터 시작해 세 사람의 의사를 보내고
네번째로 내가 오게 된 것이다.
네 군데의 정부 병원을 방문해서
X-선
강의와 간증을 갖게 되었는데 정부 병원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간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어찌 보면 한국이나 미국보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자유스러운 데가 있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강의 시간에 간증 설교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기독 의사회에서는 정부 병원 하나를 기독 병원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마침 내가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우연찮게도 그 뜻이 이루어졌다. 제
54병원을
의사회 임원들과 함께 찾아갔다. 방문하기 전에 병원 관계자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세히 의논했다.
흔히 “당신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든지, “저희들이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라고 말하기 쉬운데 이러한 방법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서두를 끄집어냈다. “우리는 기독 의사회의 임원들인데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병원장과 병원 간부들이 적이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슬그머니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기 시작한다. 의사회 회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닥터 전과 같이 미국에는 러시아에 잠시 방문해서 무료 의료 봉사를 하려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러시아에 오면 배치시켜서 봉사하게 할 마땅한 병원이 없어 찾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네 제
54병원에
와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해서 의논차 찾아왔습니다.”
회의는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나갔다. 드디어 병원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병원
한쪽에 ‘러시아 기독 병원’이라는 간판을 붙여도 좋습니다”라고.
우리 일행은 기쁨과 감격에 들떠 서로 얼싸 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산재해 있다. 이제 겨우 출발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벅찬 감격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동토(凍土)의 거대한 대륙 러시아 땅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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