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선교훈련과 설렁탕

      

서울 강남 반포동에 위치한 한부선(Bruce Hunt) 선교 센터에서 94년 1월 한 달간 있는 제 23차 MTI 선교 훈련 중에 의료 선교 강의를 맡아 하게 되었다. 한주일간을 선교사 후보생 약 120명과 함께 합숙하면서 참으로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MTI(Missionary Training Institute)는 예수교 장로회 총회 훈련원으로 1983년 겨울에 43명의 선교사 지망생들로 처음 시작되었다. 그 이후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한 달씩 합숙하며 훈련을 받는데 올해로 벌써 23차를 맞고 있다. 여름과 겨울의 합숙 훈련 외에도 봄과 가을에는 3개월간씩 통근을 하면서 받는 훈련이 있다.

여름과 겨울의 강의에 평균 백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을 하고 봄과 가을 코스에는 약 30여 명의 학생들이 신청을 한다. 지난해까지 약 2백여 명의 선교사들이 MTI 훈련을 마치고 현재 세계 50여 개국의 선교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MTI는 원장 손영준 목사님의 인도 아래 10여 년간 훌륭하게 성장해 온 것이다.

 

이 훈련원의 특징은 훈련 기간 중에 영어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십여 년간 세계의 여러 선교지를 돌아다니면서 선교 활동에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선교지에서 참으로 긴요한 일이다.

미국에 와서 사는 많은 한인 교포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실로 크다 할 수 있다. 말을 못해 답답한 것은 물론이고 같은 일을 해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렇게 대우를 잘 못 받으면 말을 못해서 무시를 당한 것은 생각지 않고 우선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불평을 한다. 한국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상식도 풍부한데 언어 소통이 신통치 않아 무시를 당하고 차별을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영어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국제 언어이기 때문에 선교지에 가서 사역을 해야 하는 선교사들에게 영어는 필수적이다. 물론 현지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지만 선교사들은 자기의 선교 사역지뿐 아니라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접촉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영어는 꼭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MTI는 영어 프로그램을 선구자적인 입장에서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 달간 계속되는 훈련은 문자 그대로 강행군이다. 아침 6시 새벽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경 끝나는 간증 집회까지 하루 종일 다양한 선교 훈련이 계속된다. 나는 오전에 3시간 선교사의 건강 관리에 관한 강의를 맡았는데 내가 영어로 강의를 하면 전경숙 선교사 후보생이 통역을 해주었다. 통역을 어찌나 잘하는지 모두들 감탄을 했다.

원래 통역은 여자들이 잘하는데 특히 동시 통역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잘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왜 여자들이 더 잘하는지 그 이유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기로는 남자들은 논리가 더 발달되어 있으므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일일이 다 듣고 그것을 이해한 다음 통역하려는 반면에 여자들은 논리보다는 감정이 발달되어 있어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고서도 상대방의 의도를 재빨리 포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오후 시간에는 영어 훈련 강의를 맡았는데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미국인 2사람, 호주인 3사람, 그리고 나까지 6명이다. 훈련받는 선교사 120명을 6반으로 나누어 소그룹으로 영어 훈련을 실시했는데 나는 국제 영어(International English)를 가르치려고 마음먹었다. 국제 영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 낸 말이므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라고 해서 다 같은 영어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와 영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또한 호주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다소 다르다. 인도 사람도 영어를 쓰고 그 이외의 많은 나라에서 영어를 통용어로 쓰는데 이 같은 경우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나 나름대로 국제 영어라고 이름 붙였다.

예를 들면 “물”(Water)이라는 단어를 미국 사람들은 “워러”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워덜”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워러”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 이외에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국제 영어는 우선 발음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다 발음해 주는 것이다. “물”을 “워터”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저녁에는 선교사 후보생들이 영어로 간증하는 시간이 있는데 선생들은 이들의 영어와 간증 내용을 심사한다. 많은 경우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다. 필요 이상으로 혀를 굴리려는 경향이 있고 특히 단어를 끝까지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어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Jesus Christ)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어떤 후보생들은 “지서 크라이스”, 심한 경우에는 “지서 크라이”(Jeso Cry)라고 발음하니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크라이스트”는 끝의 발음 “트”가 확실히 들려야 한다. 언뜻 듣기에 딱딱하고 서툰 영어 같지만 그것이 훨씬 더 잘하는 영어이다.
 

일주일간 합숙 훈련을 하는 동안 식사와 청소 당번을 정했는데 학생뿐만 아니라 강의를 맡은 강사들도 이 일을 분담했다. 강사들은 아침 식사는 학생들과 따로 가졌는데 그 전날 있었던 일들을 검토하고 또한 당일 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서이다. 아침 식사는 양식으로 토스트와 계란과 커피가 나온다.

나는 아침 회의는 참석하지만 식사 시간은 따로 은밀히(?) 갖기로 했다. 하루 종일 서서 강의를 하고 나면 저녁에는 온몸이 젖은 솜처럼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쓰러진다. 그래도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데 그것은 일에 대한 긴장감과, 새벽 일찍 찾아가는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대중 목욕탕, 목욕을 끝낸 후 맛보는 기사 식당의 설렁탕 맛 때문이다.

대중 목욕탕의 철제 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가 열탕에 두 다리와 등을 쭉 뻗고 기대어 앉으면 여하한 피로도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다. 미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나는 대중 목욕탕을 자주 찾는다.

그것도 잘 다듬어진 초현대식 사우나보다는 옛날식 목욕탕을 더 즐긴다. 어렴풋한 향수(鄕愁) 때문도 있지만 피로를 푸는 데는 열탕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열탕으로 온 몸의 피로를 말끔히 풀고 난 후에는, 선교 센터로 걸어오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기사 식당에 들어가 노란 유니폼을 입은 운전 기사들과 나란히 앉아 뜨거운 설렁탕을 후루루 떠먹는다.
 

선교 센터에 함께 와 있던 외국인 강사들이 내가 매일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눈치다. 나는 대중 목욕탕과 설렁탕 이야기를 마치 소설의 한 토막처럼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해준 후 누구든지 관심과 용기가 있으면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당장 두 사람이 기꺼이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이튿날 새벽 키가 6척이나 되는 파란 눈의 두 외국인을 대동하고 목욕탕 매표구 입구에 당도하자 표 파는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당연하다. 탕에 들어가니 많지 않은 새벽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돌아선다. 그러나 외국인 강사들은 쳐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탕을 들락날락하며 매우 기분이 좋다고 호들갑을 떤다. 열탕은 다음 번에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고 우리는 목욕탕에서 나와 다음 행선지인 기사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기사 식당은 고급 요릿집이 아니며 뚝배기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아도 설렁탕은 팔팔 끓여서 먹는 것이니까 깨끗하고 배탈날 염려가 전혀 없다고 미리 귀띔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얼마나 맛있게 설렁탕 그릇을 비우는지 나의 식욕까지 덩달아 더 솟구쳤다. 목욕탕에서 갓 나온 발그스레한 얼굴의 외국인들이 설렁탕 국물을 훌훌 떠먹는 모습은 기사 식당의 단골 운전 기사들에게도 이색적인 구경거리였으리라.

예전 같으면 지저분한 설렁탕 집에 외국 사람을 그것도 강의하러 온 점잖은 손님들을 데리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인데 이런 배짱이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제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떳떳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두 외국인의 겸손한 태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목욕탕에서는 물론이고 설렁탕 집에서도 “원더풀”을 연발하며 맛있다고 야단 법석을 떨었다. 외국에 나가서 그곳 풍습을 접하거나 고유의 음식을 먹을 때 자기에게 꼭 맞지 않더라도 칭찬을 해주는 것은 좋은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에 나가서 현지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특히 음식에 있어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이 김치와 된장, 고추장을 꼭 먹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고 있다. 나는 열대 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코리엔더(Coriander) 풀냄새가 아직도 비위에 거슬리는데 이것에 익숙해지려고 계속 훈련 중이다.

나의 의료 선교 강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째는 선교사 자신들의 건강 관리로, 스트레스에 관련된 건강 관리와 질병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현지인들을 위한 의료, 특히 지역 보건 관리(Community Health)를 강의했다. 그 중에서도 선교사들의 스트레스의 원인과 해결책에 중점을 두었다.

 

MTI가 언어 훈련 이외에 선교사들의 건강 관리와 스트레스 문제 등의 현지에서 부딪히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도록 배려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러한 배려가 MTI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선교 기관과 훈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발전되어 가기를 바라며 일주일간의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단기 선교지인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