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이 마흔에 성성악 굥부를 시작했는가?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게 주어진 것만을 가지고 즐길 수밖에 없다?라고 한 버나드 쇼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성취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덤덤히 하루하루를 필요한 일에 쫓기어 사는 사람들이 실로 많다.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내가 다니는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의 오랜 친구인 김영훈 장로로부터 존 홀트가 쓴 아직 늦지 않았다(Never too late)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이 책은 홀트가 어떻게 해서 40세에 처음으로 첼로를 시작해서, 그의 노년 생활을 첼로를 키며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가를 소상히 적고 있다.

홀트는 교육가로 저술가로 잘 알려졌는데, 40세에 사회적으로 유명해졌고 재정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지난 인생을 곰곰이 돌아보며 40년 동안 자신의 삶이, 단지 필요에 의해 얽매어 살아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이나 물리는 좋아서라기보다 낙제를 면하기 위해 마지못해 했으며, 직장 생활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서 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의 접시를 닦는 일, 학부형 회의에 참석하는 일도 즐거이 원하는 일은 모두 아니었다. 이제 마흔이 되어 생활의 안정을 찾자 그는 지금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즐겁고 뜻있는 일을 찾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그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낚시, 골프를 시도해 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친구 집에 갔다가 발견한 첼로가 그의 여생의 큰 즐거움의 선물이 된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사촌 형 최영원은 바이올린을 했는데 어린 나에게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등 감미로운 선율을 들려 주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나도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나는 바이올린보다는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태리 가곡을 멋지게 불러 보고 싶고 오페라 아리아, 특히 성가곡을 은혜롭게 불러 보고 싶은 욕심을 늘 갖고 살았다. 그런데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의 내게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일은 상상을 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게 홀트의 아직 늦지 않았다는 큰 용기를 주었다. 그가 마흔의 나이에 처음으로 첼로를 시작했다니 나의 노래 수업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좀더 잘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언젠가는 교회에서 솔로로 찬송을 부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품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나는 성악 선생 미세스 바필드의 아파트 철책 문을 쿵쿵 대담하게 두드릴 만큼 용기가 생겼다. 흰 머리가 수북한 나를 보고 바필드 부인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찬송가를 잘 부르고 싶어 성악 레슨을 받으러 왔다는 나의 이야기를 미소 띤 얼굴로 즐겁게 받아 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목사님 부인이었다. 우연히 찾아간 바필드 부인은 내게 다양한 레퍼토리의 성가곡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르쳐 줄 수 있었던 바로 적임자였던 것이다.

레슨을 받는 1시간 동안 나는 병원 생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감격과 기쁨을 맛본다. 새로운 곡을 받아 한 소절 소절 노래를 만들어 가노라면 나의 마음은 어느새 뿌듯한 행복감으로 물결친다.


 

이 같은 기쁨이 나의 교회를 벗어나 아프리카의 케냐, 인도의 방가로아, 브라질의 상파울루 선교지에서까지 계속된다. 나의 목소리가 배터리로 작동하는 윙윙거리는 앰프의 선율에 맞추어 머나먼 외지(外地)의 하늘을, 가난하고 무지(無知)하지만 마음이 착하디 착하고 순진한 원주민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님의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