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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가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파바로티 국제 콩쿠르에 다부진 체격에 금테 안경 밑으로 환한 미소가 돋보이는 서른 살의 한국 청년 최현수씨가 끼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와 내 아내는, 필라델피아에서 음악 콩쿠르라도 열릴라 치면 우리 집을 음악도들을 위한 민박으로 기꺼이 내어놓곤 하는데, 그 해
마침 파바로티 콩쿠르에 참석한 최현수씨가 우리집 갈색 대문을 두드린 것이다.
최현수씨는 그 당시 이미 베르디 국제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타는 등 성악도들 사이에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터이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촉망 받는 성악도를 정성껏
맞이했다.
그 이후 최현수씨는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는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고, 현재 한국과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나는 최현수씨를 생각할 때마다, 아브라함이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해 여러 손님을 대접하던 중 천사를 대접했던 것처럼(창
18장),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손님을 대접하던 중 그를 만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최현수씨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의 성악가로서의 화려한 경력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가슴을 울리는 미성(美聲)과 고도의 테크닉
때문도 아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순수한 정열이, 나를 끊임없이 매료시키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매끈한 솜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성악 레슨이라도 받을라 치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그의 입에서 마치 거미줄처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기 위한 그의 정열은 나를 매번 놀라게 한다. 이태리 성악가, 독일 성악가,
50년대의
성악가,
90년대의
성악가 등에게서 터득한 이런 저런 테크닉으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중학교 시절부터 독학으로 습득해 나간, 어떤 성악 이론 서적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노래 비법 등, 참으로 그의 실질적이면서도 해박한 지식은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한다.
파바로티 콩쿠르 기간 동안에도 나를 앉혀 놓고 종종 성악 레슨을 해주곤 했다. 얼마나 열심인지 나의 아내는 걱정이 되어 내일 모레면 콩쿠르이니
목소리를 아끼시고 레슨은 그만하시라고 해도 싱글싱글 미소를 띨 뿐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이미 그 이전에
10여
년간 성악 레슨을 받아 오던 터이었지만 어려운 발성 테크닉과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비법은 모두 그에게서 배웠다. 나의 목소리의 결점을 고쳐
주기 위하여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며 고심하던 그의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서린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 이후 우리는 최현수씨 가족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가끔씩 만나며 아름다운 교류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기 훈련과 발전을 위해, 늘 새로운 발성법을 시도해 보며 공부하는 최현수씨를 지켜 볼 때에 머리가 수그러진다.
여러 차례 성악 레슨이 계속되면서 어느 날 나는, 내가 최현수 선생의 제자라고 말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좋다고 승낙을 한다.
나는 노래 안에 살고, 노래를 위해 사는 진정한 한 음악인의 제자인 것이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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