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조 청청한 루스 쉐이퍼   

   

루스 쉐이퍼(Ruth Shaffer)는 선교 활동을 시작하며 내가 만난 많은 여성들 가운데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여인이다. 루스는 1923년 명문 휘튼 대학을 졸업하자 그 해에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의 케냐로 가서 케냐의 한 외딴 마을 마사이 촌에서 35년간을 봉사한 여선교사이다. 1988년 초 가을, 그의 나이 이미 90세가 넘었을 때 백발의 꿈 많은 소녀 같은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가 1986년에 케냐의 마사이 마을에 진료소를 세우고 단기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사이에서 지속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려면 마사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모두들 마음만 있을 뿐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중 우리 교회 김영훈 장로의 열정적인 설득으로 우리들 몇 명이 드디어 마사이 말을 배우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막상 마사이 말을 배우려고 하니 마땅한 책도, 사전도 찾을 길이 막막했다. 그런 처지에 마사이 말을 가르쳐 줄 선생을 찾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1988년 휘튼에서 열린 한인 세계 선교 대회에 참석했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자이르에서 알게 된 닥터 파운튼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마사이 선교를 시작하게 된 것을 알고 있는 파운튼은 루스의 마사이 선교를 기록한 자서전 킬리만자로로 가는 길(Road to Kilimanzaro)을 내게 건네 주었다. 이 책은 후에 김영훈 장로가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미 90세를 넘기었으니 세상을 떠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그곳에 마사이 말을 하는 선교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녀가 옛날에 머물고 있었다는 필라델피아 근방 워민스터 동네의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양로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루스는 아직 그곳에 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30대의 여성처럼 맑고 짜랑짜랑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 것이 아닌가? 며칠 후 아내와 김영훈 장로 부부와 함께 양로원을 찾아갔다. 현관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7-8명이 앉아 있는데 그 중 한 할머니가 반가움에 못 이긴 얼굴로 우리 앞으로 뛰다시피 달려온다. 사진에서 보았던 틀림없는 루스이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껴안고 키스를 하면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루스는 언뜻 보아도 91세라는 나이가 참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다. 89세까지 양로원에서 전화 받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부엌에서 일을 하면서 노인네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양로원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데도 다른 노인네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사랑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한다.

자신이 거처하는 작은 방을 보여 주는데 자그마한 침대와 나무 책상 하나, 곰팡내가 나는 몇 권의 책과 빛 바랜 사진 몇 장이 드문드문 걸려 있는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루스는 천하에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여왕과 같은 인상을 준다. 그의 태도는 마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은 그의 정정하고 당당한 모습에 마사이 말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루스는 자신이 손수 타자를 쳐서 만든 마사이어 사전과 문법책을 보여 주면서 이 희귀하고 귀중한 책을 다시 사용할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쁘다며 감격스러워 한다.

우리는 김영훈 장로 집에서 마사이 단기 선교팀 7-8명이 모인 가운데 첫번째 수업을 가졌다. 주중이고 저녁 시간이라 1시간만 수업을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루스는 장장 3시간을, 권하는 의자도 굳이 마다한 채 꼬박 서서 강의를 강행한다. 허리에 브레이스띠를 차고 있는 것을 보니 허리가 많이 아픈 모양인데 아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루스를 만날 때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새로운 도전과 힘을 얻는다. 육체적으로는 젊은이처럼 뛰지는 못해도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강인한 힘은 어느 젊은이도 따라 가기가 힘들 듯하다. 영육간에 강건할 뿐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일 또한 건강한 우리보다 더 훌륭하다.

처음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만들어 대접하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루스에게서 내가 늘 바라고 원하는 성령 충만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본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시 9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