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올손과 말룸갓 기독 명원   

        

닥터 코딩톤이 주선해 준 일정에 따라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방글라데시 제 2의 도시인 치타공에 며칠간을 머물면서 치타공 의과 대학 병원에서의 강의를 무사히 잘 마쳤다.

치타공에서는 미국 선교사 투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카에 있는 한국 선교사 투숙소와는 달리 방들도 널찍널찍하니 크고 천정도 높아서 속이 탁 트이는 듯하고 샤워도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 낸다. 돈 많은 미국 선교부가 확실히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아담이라고 하는 미국인 대학생이 이곳에 단기 선교를 나와 있어 같은 숙소에서 지내게 되어 적적하지 않았다. 아담은 대학 졸업반인데 장차 선교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의사가 되어 의료 선교사가 되거나 목사로 선교를 나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염두에 두고 현지 경험을 쌓기 위해 치타공에 3개월의 일정으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6척에 가까운 훤칠한 키에 짙은 갈색 머리카락, 이목구비가 선명한 것이 잘 생긴 영화배우 같은 인상이다. 아담은 특별히 맡은 사역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내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와 함께 여기저기를 다녀 보기로 했다. 이곳에 이미 2개월 정도를 머물렀고 벵갈어를 조금 할 줄 아니 내게는 훌륭한 안내자가 되었다.

 

나는 우선 방글라데시에 오면 꼭 만나 보리라고 마음먹었던 닥터 올슨(Viggo Olsen)을 찾아 보기로 했다. 아담에게 뜻을 전하니 그도 좋다고 해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올슨이 있는 말룸갓(Malumghat)의 기독 병원은 시외 버스로 5시간을 가면 되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도로 포장이 안 돼 먼지가 풀풀 나는 울퉁불퉁한 시골 길을 지루하게 달려가는데, 버스는 비교적 깨끗하고 딱딱한 의자이지만 앉아 갈 수 있어 불편이 없는데 말을 할 줄 모르니까 말룸갓에서 제대로 내릴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났다. 운전사뿐만 아니라 여남은 명의 승객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담이 구사할 줄 아는 몇 마디 벵갈어에 의지할 수밖에는 더 이상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가는 길에 개울을 여러 개 건너야만 했다. 다리가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버스가 물 속을 엉금엉금 기어 건너는데 마침 건조기라 물이 불지를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마침 승객 중의 한 사람이 “말룸갓에 다 왔다”고 큰 소리를 친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말룸갓이 꽤 잘 알려진 큰 마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마을만 눈여겨 보아 왔는데 정작 우리가 내린 곳은 작은 판잣집 몇 채가 듬성듬성 모여 있는 초라한 마을의 볼품없는 가게 앞이었다. 그 앞으로 희뿌연 먼지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말룸갓 버스 정유장이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다행히 얼마 걷지를 않아 커다란 간판에 선명한 필체로 뚜렷이 적은 기독 병원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병원은 드넓은 광야에 단층으로 지은 아담한 병동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선교사 사택들이 띄엄띄엄 평화스런 모습으로 눈에 뜨인다. 이 기독 병원(Memorial Christian Hospital)은 닥터 올슨의 끈질긴 노력으로 1966년에 설립되었다. 창립자 올슨은 병원 설립을 위해 3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끝내고 62년부터 이곳 방글라데시(그 당시 이름은 동 파키스탄)에서 살기 시작해 30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 땀과 사랑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의 노신사 올슨이 귀족적인 점잖은 태도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얼굴 가득 머금고 있는 온화한 미소가 그대로 “우리를 환영함”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예의 바른 점잖은 태도가 어딘가 가까이하기 힘들 것 같은 첫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올슨은 “어디에 사느냐? 가족은 몇 명이나 되느냐? 언제 미국에 가서 그 동안 무엇을 했느냐? 여기는 왜 왔느냐?” 등등 어찌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질문을 던지는지 나도 모르게 오래전부터 만나 온 듯한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생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하는 그의 자상한 관심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지는 것이다.

내가 올슨 박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특별한 의료 선교 정책 때문이다. 언젠가 그의 13가지 의료 선교에 관한 정책을 접한 후 그를 직접 한번 만나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 정책에서, 의료 선교를 하려면 제대로 된 병원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발달된 의료 기계와 시설이 꼭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그 당시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선교부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병원보다는 무의촌 진료 방식의 의료 선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번에 기독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로부터 선교지 병원 운영에 관한 여러 가지 효율적인 방법들을 배웠는데, 그 중 의사를 대신해 여자 및 남자 간호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이 방법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대에 부딪칠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선교지 병원에서 겪고 있는 의사 부족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환자는 당연히 의사가 진찰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교지에서는 그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다. 하루에 2-3백 명의 환자가 몰려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꼼꼼히 환자를 살피고 그렇게 해서 시간이 못 미치는 환자는 그냥 돌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대충대충 환자를 살펴서 병원을 찾은 환자를 모두 어느 정도는 치료를 해서 돌려보낼 것인가? 두 가지의 선택 방법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올슨 박사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버리고 다른 방법을 택했다. 간호사로 하여금 환자를 진찰하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간호사가 진료를 하면 오진율이 높아지겠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를 다 보아 주고 5% 정도의 오진을 하는 것이 50%의 환자밖에 치료하지 못하고 그냥 돌려보내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은 올슨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선교지 병원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를 우선 간호사가 진찰해서 감기나 소화 불량, 간단한 외상 같은 가벼운 증세는 간호사가 치료하고 그 밖에 진찰하기 까다로운 병은 의사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을 간호사가 보게 되고 의사는 나머지 환자를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진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에 온 환자를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이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려면 자격 있는 간호사를 길러 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의료 선교 정책을 세울 때 간호 학교 운영에 좀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효율적으로 활기 있게 병원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