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의 목욕탕     

   

에콰도르와 페루간의 전쟁이 막 시작되어 국내외 외신이 연일 시끄러웠다. 그런 가운데 아내와 나는 95년 2월 3일 예정대로 필라델피아 공항을 출발해 나의 12번째 선교지가 될 에콰도르를 향했다. 수년 전 아프리카 케냐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에 그곳에 있었는데 별 탈없이 무사히 지낸 경험이 있어 그다지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에콰도르는 수년전 엘리옷 여사가 쓴 “황홀한 문을 통하여” (Through gates of splendor)라는 책을 읽은 후에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엘리옷 여사의 남편과 5명의 젊은 선교사들이 아우까 인디언들에게 순교를 당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 사업을 위한 선교 여행을 떠나 부부가 함께 그곳에서 죽는다면 오히려 영광스런 죽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두려움을 몰아내 주기도 했다.


나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다. 하물며 비행기를 타도 혹시 이 비행기가 얼마쯤 가다가 수천 길 아래로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10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가는데 엔진은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다. 더구나 아프리카 정글을 단발 경비행기로 비행할 때는, 어떤 때는 엔진 소리가 꺼지는 것도 같고, 비행기가 마구 흔들릴 때는 이러다가 비행기가 그만 깨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요사이는 1년에 몇 차례씩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도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비행을 즐기게까지 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에콰도르에서의 전쟁 따위도 그다지 마음이 쓰이질 않는다.

 

에콰도르는 남미에 위치한 자그마한 나라로 에콰도르라는 이름은 적도라는 뜻이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적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태평양 연안의 비옥한 땅이 있고 높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가면 아마존의 정글로 이어진다.

에콰도르 여행 일정을 보니 우리가 가야 할 병원은 키토에서 자동차로 5시간 반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높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제일 꼭대기 산으로 난 길이 해발 3,50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백두산보다 휠씬 더 높은 셈이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곳곳에 낭떠러지가 많고 길은 한없이 좁아서 산을 넘다가 앞에서 차가 오면 길이 조금 넓은 곳까지 뒤로 비켜 물러나 주어야 겨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해 페루에서 이런 좁은 길을 자동차로 5시간이나 가느라 진땀을 뻘뻘 흘린 일이 있어 다시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일찌감치 경비행기 예약을 해놓았다.

키토에 토요일에 도착을 했는데 전쟁 때문에 군용 비행기 이외의 모든 국내선 비행기는 뜨지 않을 것이라는 풍문이 돈다. 그래서 선교비행협회에 전화를 걸어 재차 문의를 해 보니 “문제없다”는 대답이 시원스럽게 나온다. 월요일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재확인을 했다.

 

다음날은 주일이라 선교사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는데 마침 내가 가야 할 병원에서 일하는 쟈넷이라는 간호 선교사가 “키토에 오는 길에 비행 사정이 어려워진다는 소문을 듣고 장로님과 부인을 모시러 왔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고 한다. 비행기를 예약을 해놓은 형편인 데다가 젊은 아가씨가 운전하는 커다란 밴을 타고 험준한 산길을 넘을 생각을 하니 언뜻 따라 나서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태워 가기 위해 친절한 성의를 베푸는 간호사에게 비행기를 타고 갈 터이니 그냥 가라고 하는 말도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잠시 망설인 끝에 우리는 밴을 타고 가기로 아내와 결정을 내렸다. 비행기는 해약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짐을 꾸려 부랴부랴 밴에 올라탔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타고 가려던 경비행기를 포함해서 모든 비행기가 월요일 오전 비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밴을 타고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무작정 키토에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될 뻔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재수가 좋았던 것인가? 아니,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일조차 관여하시며 도와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마음이 더욱 든든해진다.

 

키토에서 정글에 있는 병원까지 5시간 반의 산길은 참으로 장관이다. 험하기로 치자면 대관령 산길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첩첩 산중에 구불구불 나 있는 길 아래로 손에 잡힐 듯 솜털 같은 구름이 내려다보이고 그 사이로 간간이 천길 낭떠러지 사이로 계곡의 물이 흐른다. 천하 절경이 두려운 마음을 앗아가 버렸다. 페루보다 나무가 울창해 무서운 생각이 덜 하기도 하다. 문득 정철의 송강 가사와 도연명의 아름다운 시 구절이 생각난다.

빽빽이 붐비는 자동차, 전화 벨의 따르릉 소리, 텔레비전에서 쏟아 내는 각종 정보, 컴퓨터의 똑딱 소리로 바쁘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옛 시인들이 가졌던 낭만은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가? 눈 덮인 높은 산, 발 아래로 펼쳐지는 구름 숲, 안개 낀 첩첩 산중을 계속 정글을 향해 아래로 질주하면 만난다는 백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에 나는 마치 천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듯 황홀해졌다.

가는 길에 “바뇨스”(목욕탕)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에서 잠시 쉬어 가게 되었다. 뾰족뾰족한 높은 산이 병풍처럼 삥 둘러싸고 있는 아주 아담한 마을이다. 여기저기 높은 폭포수가 흐르고 그 밑으로 온천장이 있다. 유황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광물질이 섞인 물이 달걀을 삶을 만큼 펄펄 끓는다. 이 물을 끌어내어 열탕과 온탕으로 구분해서 야외에 목욕탕을 만든 것이다. 남녀가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수영복을 입게 되어 있다. 남미 사람들의 수영복은 실오라기 몇 가닥을 걸친 정도라 이방 사람들에게 눈요기 거리가 된다.

열탕에 들어가니 굳어 있던 근육과 관절이 모두 풀리는 듯 시원하고 갑자기 청년이 된 것처럼 기운이 솟구친다. 물이 너무 뜨거워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뛰쳐나와서는 폭포수에서 열기를 식힌다. 그 상쾌한 맛을 어디다 비할 수 있으랴. 갈 길이 멀어 아쉬운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총 35개의 병실을 갖고 있는 동부 안데스 소리 병원(Hospital Vozandes del Oriente)은 안데스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여기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아래쪽으로 달리면 울창한 정글 지대가 나타난다. 5명의 선교사 의사와 4명의 에콰도르 의사, 그리고 단기 봉사를 나온 미국 의과 대학생 1명이 병원을 지키고 있다. 이 병원은 흔히 쉘 병원이라고 불리는데 원래 쉘 석유 회사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950년 쉘 석유 회사가 철수한 후에 MAF 비행 선교사인 네이트(Nate)와 메리 세인트(Mary Saint) 부부가 이곳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보게 되다가 58년 에브 풀러(Ev Fuller) 의사가 이곳으로 오면서 마침내 병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세인트 비행 선교사는 아우까 인디언에게 순교를 당했는데, 그가 살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하다 목숨을 빼앗긴 젊은 믿음의 용사가 아련히 눈에 잡혀 감회가 새로웠다.

 

병원 설립을 추진했던 풀러 박사는 은퇴를 한 후에도 단기로 와서 계속 봉사를 하고 있다. 마침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 풀러 박사 부부가 머물고 있어 훌륭한 의료 선교사 가까이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에콰도르 정글은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이다. 2월은 건조기라고 하는데도 매일 비가 조금씩 내린다. 어느 날 정글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묻어 나는 쪽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놓는데 산도 없는 곳에 어디서 흘러 나왔는지 모를 작은 폭포수가 앙증맞게 졸졸 흐르고 있다.

 

화창한 날이지만 정글 안은 울창한 나무들로 어두침침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도넝쿨처럼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힌 넝쿨 더미에 여러 가지의 야생화가 천연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흐드러지게 피어져 있다. 나는 그만 그 경치에 도취하여 찬송가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한 곡조 부르고 행여 길을 잃을세라 총총히 발걸음을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이런 정글에 석유가 그렇게 많이 난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특수하게 만든 지도를 살펴보니 펜실베니아 주보다 조금 클까 말까한 이 작은 나라에 비행기 활주로가 2백 군데나 설치가 되어 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모두 개발한 것이다.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과학이 발달하지 못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물가가 싸니 여행자에게는 제격이다. 작은 마을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식당에서 다섯 사람이 최고급 요리를 시켜 실컷 배불리 먹었는데 모두 고작 23달러가 나왔다. 차리스꼬라는 요리는 비프 스테이크에다 달걀과 아보카도, 토마토를 곁들여 먹는 것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하기야 선교지에서는 뱃속이 늘 허기가 진 듯하니 더욱 맛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선교 병원이 그렇듯이 이곳 병원의 X-선과도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전쟁 발발로 군인 부상자를 대비하기 위해 입원 환자들의 반 이상을 퇴원시킨 상태라 병원은 더욱 한가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여유 있는 상황은 병원의 의사들을 위해 방사선 강의를 좀더 알차게 하고 환자들에게 간증과 찬양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의 하나는 병원 목회를 담당하고 있는 헤수스 몬테로(Jesus Montero)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찬양과 간증으로 환자들을 위한 그의 목회를 돕기로 약속하고 예배에 참석했는데 첫날 오후 예배에 어른 두 명과 어린 아이 세 명이 모였다. 준비해 간 커다란 마이크와 쩡쩡 울리는 스피커가 무색해졌다.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이제 시작을 하라고 명하신다. 나는 애써 실망의 빛을 감추고 목청을 한껏 가다듬어 찬송을 부르고 서투르나마 스페인 말로 간증을 시작했다.
 

그날 이후 에콰도르를 떠날 때까지 몬테로 목사님을 병원 여기저기에서 자주 뵙게 되었다. 목사님은 그곳이 병원의 길다란 좁은 복도이든,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웅성대는 환자 대기실이든, 아늑한 목사님 사무실이든 가리지 않고, 한 명이든 혹은 두세 명이든 성경을 읽어 주신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큰 목소리로 전해지는 설교와 찬송의 예배만을 늘 보아 왔던 내게 그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몬테로 목사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시는 분(마 25:21),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언제나 말씀을 전하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딤후 4:2)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모든 예배가 늘 이렇게 조촐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선교사 투숙소 옆에 군부대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저녁 그곳에서 찬송을 불러 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커다란 강당 같은 곳에 삐그덕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마에 수건을 두른 3백여 명의 군인들이 총을 어깨에 걸러 멘 채 빽빽이 들어 차 있다. 보통 군인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발에 군화 대신 긴 고무 장화가 신겨 있는 것이다. 사방이 정글과 습지로 둘러싸인 에콰도르의 지형적인 특성이 군화를 고무 장화로 둔갑시킨 것이다

 

준비해 간 마이크와 스피커가 나의 찬양을 크고 우렁찬 것으로 만들었다. 이어 목사님의 속삭이는 듯한 잔잔한 설교가 계속됐다. 예배가 모두 끝나자 13명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믿겠다며 손을 번쩍 들고 강단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온다. 전선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다음날 바로 세례식이 베풀어졌다. 감격적인 일에 동참할 수 있었던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 에콰도르에서의 귀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