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성경에는 천국의 모습이 이곳 저곳에 조금씩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종합해 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지만, 예수님의 얼굴이 그의 눈 앞에 보였을 때 평화스런 얼굴로 천국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바다에 갑작스런 사나운 풍랑이 일었을 때 예수님이 그 풍랑을 잠잠하게 가라 앉혀 주자 배에 탔던 어부들은 마음에 평화를 가질 수 있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어느 곳이든지 그곳이 천국이 된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어디나 천국이니.?

둘째로, 천국은 내 마음속에 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눅 17:20-21)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충분히 가지면 지상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가난에 쪼들리면서 천국을 만들기는 힘이 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이 풍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날은 참으로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 천국과 같은 기분이지만, 또 어떤 날은 괜스레 마음이 무겁고 지루하여 하루종일 안절부절 못하는 때가 있다.

갑자기 어디 병이 난 것도 아니고 어제나 오늘이나 별다를 것이 없는데 하루는 천국과 같이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날은 지옥과 같이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천국이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에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천국은 이 세상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직도 많은 부분을 진노 가운데 두고 계시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과학 문명의 발달,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발달과, 우리의 심신을 기쁘게 해주는 음악, 미술, 운동 등을 통해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수 있는 여러 가지 여건을 마련해 주고 계시다.

구공탄을 피우느라 늘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셨던 20여 년 전의 생활에 비해 스위치 하나로 온 집안을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들 수 있는 요즘의 생활은 과히 천국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예전에는 한번 걸리면 죽는 줄로만 여겼던 폐결핵이나 폐렴 같은 질병을 요즘은 쉽사리 고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런 환경을 어찌 천국과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환경을 천국과 같이 소중히 여기느냐 혹은 그저 대수롭지 않은 하찮은 일로 여기느냐의 차이이다. 하기는 이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완전한 것이 아니요, 천국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눈을 돌려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 생활 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던지 천국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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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로, 천국은 하늘 나라에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히 살게 될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이다(계 21:1-3). 천국의 아름다운 모습은 언젠가 실제로 가 보아야 그 참모습을 알 수 있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종합해서 짐작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천국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천국은

첫째는 예배이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계 19:6-7).

수만의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의 광경은 참으로 웅장하고 찬란할 것이다. 수년 전에 필라델피아 공회당에서 만여 명의 성도들이 힘차게 부르던 찬송 합창 소리가 너무도 감격스러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잊혀지지 않는데, 하물며 천국에서 부르는 성도들의 합창은 얼마나 우렁차고 아름다울 것인가?


 

 

둘째는 봉사이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계 22:3)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천국에서도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마음에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듯이, 천국에서도 주님의 일에 열심을 다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 분명하다. 그곳에서는 봉사를 하며 지치는 일이 없고 걱정도 없을 것이다.


 

 

셋째는 성도의 교제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부모와 형제, 자식들, 친구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알아보았다. 모세와 엘리아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마 17:1-3),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나사로를 볼 수 있었던 것을 보아도(눅 16:20-25), 부활한 우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가깝게 지내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교제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천국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므로 오래전 사망한 사람들과도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다윗 임금, 모세를 만날 수 있고 베드로와 바울 사도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이나 헨델과 같은 훌륭한 음악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니 가슴에 벅찬 감격을 금할 수 없다.